독후감 - 2018년 10월 ~ 11월

대체 뭐가 문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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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e Your Lights On?

제럴드 와인버그 선생의 대체 뭐가 문제야 개정판을 샀다. 마침 가방없이 교보문고에 간 날이었고, 마침 이 책이 외투 주머니에 쏙 들어갈 정도였고, 마침 와인버그 선생이 돌아가신 지 얼마 안 되기도 했다.

극과 극의 평을 받는다고는 했으나 나는 꽤 좋았다. 특히 첫 장의 몰입감이 좋았는데, 뒤로 갈 수로 맥이 풀리기도 한다.

"문제란 바라는 것과 인식하는 것 간의 차이다."

"누구의 문제인가?"

"정말로 무엇이 문제인가?"

우리가 문제로 인식하는 것이 진짜 문제인지, 그게 누구의 문제인지, 그런데 답을 내면 그게 답이 맞는지…결국 돌고 돌아 아무 것도 아닌 책이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볼 수 있어서 좋았다. 특히 책을 읽고 얼마 후에 동료 개발자와 고민을 하고 의견을 나눈 뒤 다른 개발자와 이야기를 하는 도중 그 개발자가 문제를 없애준 경험을 겪고 보니, 역시 나는 문제를 보는 눈이 없구나 싶기도 했다.

또 읽다보니 와인버그 선생의 테크니컬 리더를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가 오해를 했거나 오래전에 읽어서 기억이 가물거릴 순 있지만, 난 그 책이 서로 소통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문제를 해결해야 할 사람이 누군지를 끊임없이 이야기 해준다고 생각을 했다 - 그것만 기억에 남은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역시나 고민을 던져주는 책인데, 그래도 짧은 시간 한가지 주제로만 머리 아프게 해주니 고맙기도 하고, 남에게 추천하기는 또 애매하기도 한데, 누구든 빌려달라면 빌려주리라.

조엘 온 소프트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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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봤으면 내가 좋아했을 법한 스타일인데, 워낙 옛스러운 탓에 큰 감동은 없었더랬다. 이미 이 책에 영향받은 사람들이 수많은 책과 블로그를 썼고, 이 사람의 철학이 이 직군 전반에 녹아들었다고 생각된다. 작가도 재미있게 글을 쓰는 사람인데다 번역가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중간중간 번역가가 추가한 내용에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아무리 블로그 모음집이라 해도 어느정도 흐름을 고려한 편집이었기에 그 사이에 뭘 넣는 것이 어째 마뜩찮았고, 예전 PC 통신 시절의 감성을 느끼게 해줬다. 딱 그 시기이기도 하고.

나도 이럴진대, 30대의 어린 친구들이라면 조엘 이후에 (어쩌면 그에게 영향을 받은 것일 수도 있는) 폴 그레이엄의 해커와 화가, 제프 앳우드의 코딩 호러의 이펙티브 프로그래밍 등의 글을 읽는 것이 좀 더 와 닿을 수도 있겠다. 그 친구들이라면 이 사람들도 할배라고 하려나?

고전은 고전이라 좋은 글이고 좋은 관점이지만 아주 재미가 있었다고는 말하긴 힘들다. 똑똑하게 재밌는 할아버지였다.

요리는 화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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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성공하기 위한 70여 개 레시피의 모든 비밀과 해독

부제는 요란하지만 여러모로 애매한 책이다. 아직 (어떤 분은 재밌게 읽었다는) 달걀 부분을 읽지 않은 채로 쓴다.

yes24의 독자 서평은 칭찬 일색이지만(총 리뷰가 얼마 안되긴 하다), 교보문고에는 공감가는 서평과 이해 안되는 서평이 공존한다. 내가 책을 읽고 난 뒤에 서평을 다시 찾아보기 시작했다는 것은 엄청 좋았거나 (대부분은) 워낙 이상해서다.

좋은 점은 화학적 지식을 배경으로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실수들을 지적해준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소금과 후추를 뿌려야 하는 타이밍 같은 것. 때론 그런 것이 너무 미묘해서 나같은 미물에겐 큰 차이가 없어보이는 경우도 있지만, 어쨌든 과학적인 접근을 했다는 점은 좋았다. 백종원 등 여러 사람이 이야기하는 고기를 이렇게 구우면 육즙을 가두게 되죠 같은 이야기도 왜 문제인지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런 과학적인 배경을 설명하는 분량이 적기도 하고 뒤로가선 대충 설명하는 기분이 든다.

프랑스 작가니까 프랑스에서나 먹을 수 있는 레시피와 재료가 들어간 건 이해할 만 하다. 내가 어릴 적부터 프랑스 코미디 영화를 볼 때마다 느끼는 감정이 이 책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정말 프랑스의 유머 감각은 남다르다. 프랑스 영화에서 흔히 보이는 것처럼 갸날픈(확인된 바 없음) 백인(확인된 바 없음) 게이(확인된 바 없음) 청년(확인된 바 없음)의 섬세한 말투와 유머와 몸짓이 책 곳곳에서 느껴진다. 후추를 먼저 쳤다가는 내 팔을 꼬집을 것 같다. 역시 프랑스 사람들은 재미없다. - 너무 혐오 발언을 쏟아냈나? 난 갸날픈 백인 프랑스 게이 청년을 혐오하진 않는다. 그냥 이 책이 좀…

또 하나의 문제는 번역인데, 작가가 원래부터 이상한 말을 쏟아낸 게 아니라면 번역이 심각하다. 찾아보니 유명한 프랑스 요리 강사님인 것 같다. 번역이 좋았다는 사람은 도대체… 해박한 지식이 있어야 가능한 번역이긴 하지만, 글을 잘 쓰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니까. 어쩌면 출판사(도림북스)를 비난해야 정당한 일일 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책이 모두 그림으로만 이뤄져서 참 이쁜데, 이걸 레시피로 참고하기에는 참 어렵다. 새우머리와 껍질이 좀 남아서 비스크를 실험한다고 따라해봤는데, 난 비스크를 본 적도 없으니 모두지 내가 잘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색깔이 하도 더럽게 나와 아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아니, 색이 왜 이래요?”라고 놀라고, 겨우 겨우 설득해 맛은 보게 했지만 다시는 먹고 싶지 않아 했다. 맛은 나쁘지 않으나 나도 좀 떠 먹다 버렸다. 이 실패는 지식이 부족한 내가 재료를 잘못 넣은 탓이긴 하지만, 원래 어떤 모양과 색인지 알 수 없어 레시피 책으로써는 부족하다. 프랑스 요리 경험이 있는 사람이 더 잘 만들기 위해 참고하면 좋을 책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