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 2018년 6월
불안한 엄마 무관심한 아빠
오은영 박사의 불안감 없는 육아 동지 솔루션
육아계의 마틴 파울러 오은영 박사의 역작. 맨 앞에서 맨 뒤까지 버릴 게 없는 훌륭한 조언이 가득하다. 입이 닳도록 주위에 칭찬하고 추천했지만 한명도 읽지 않았겠지. 무상지급이라도 해서 읽게 하고 싶을 지경이다. 일년에 한번씩은 읽어야겠다.
슬슬 사고의 유연함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30대라면 ‘난 이 정도는 아닌데? 너무 남자는/여자는 다 똑같다고 얘기하는 것 같아’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책은 (IT계는 비교적 덜하지만) 흔히 보이는 전형적인 30~40대를 기준으로 쓴 것 같다. 하지만 남녀 차이라기 보다는 크게 두 부류의 성격으로 구분했다고 보면 된다. 불안한 사람과 무관심한 사람. 뒷부분에 아빠/엄마/아이가 각각 불안하거나 무관심한 경우의 조합을 들며 설명하는 부분이 있기도 하다.
그동안 육아책을 몇 보았는데, 도무지 마음에 드는 게 하나 없었다. 감성적으로만 접근하기도 하고, 나름 꽤 많은 근거를 들면서도 합리적으로 보이지 않고, 육아 게임에 몰두한 청소년을 위한 책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오은영 박사님은 전형적인 남녀의 육아 성향이 다른 표현으로 나타나지만 결국 불안이라는 하나의 원인에서 출발한다고 이야기한다. 육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수많은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모범 사례도 나온다. 이런 모범 사례에서 제시하는 말투는 한 호흡에 말하기도 어렵거니와 차마 입에 잘 붙지 않는 문장이긴 하다. 그런데 그렇게 차분하게 조곤조곤 이야기를 해야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도 맞다.
우리가 직업에서의 전문성에 투자한 노력을 조금만 빼서 육아에 투자하면(부모도 우리 직업이니까), 노력 대비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을리라 확신한다. 다들 그렇듯 ‘나 정도면 중간 이상은 가겠지’라는 생각을 하고 살았지만 스스로 돌아보면 잘못된 행동을 참 많이 했다. 잘못됐다는 표현이 좀 과격했다면, 효과적인 육아를 하지 못했다고 표현을 좀 바꿔볼까나?
신생아 때부터 봐서 그런지 계속 애기처럼만 생각되는데, 아이를 존중한다는 개념이 아직도 참 어렵다. 아이를 압도해야할 것 같기도 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에 강하게 주의를 줘야할 것 같기도 한데, 그게 효과적인지를 잘 생각해봐야 하겠다.
대충 키워도 잘 크기는 커녕 대충 키우면 대충 큰다.
일부 아리송한 근거가 있긴 한데, 몇가지 남녀의 불안과 전형적인 행동이 수천년 전부터 남녀 각각의 유전자에 남아있는 본능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상한데 난 잘 모르겠고 그럴듯 하기도 하고.
직업의 지리학
소득을 결정하는 일자리의 새로운 지형
어쩌다 보니 또 김영사네!
온라인에서 정광섭님이 누군가에게 추천하시는 걸 보고 적어놨었는데, 김주원님도 책을 읽고 계시길레 빌려봤다.
혁신 직종이 한 도시에서 발생할 때 이로 인한 추가 일자리가 생긴다는 이야기. 예상보다 꽤나 많다. 그것은 알기 싫다의 지방선거 데이터 센트럴에서 온통 혁신과 기업 유치를 부르짖는 것이 이해도 된다. 그런 혁신 직종은 서로를 끌어들이는데 이걸 한 도시에 유치하는 것은 사실상 누구도 확신을 갖고 이루기 힘든 일인 것 같다(모든 사업이 그렇지 않겠냐마는). 그러나 도시나 국가 차원에서 시도해볼만 일을 제안하기도 하는데 그런 건 좀 상식적인 이야기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거시적인 관점으로만 통계를 분석했기 때문에 한계도 많다. 읽는 초반 내내 찜찜했던 것은 이 사람이 혹시 낙수효과를 다루는 게 아닌가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정치인이 이야기하는 낙수효과와는 조금 거리가 있다. 우리나라의 낙수효과는 대기업에게 돈을 몰아주면 하층민이 부스러기를 나눠먹을 수 있다는 용어라면, 여기서는 직업이라는 관점에서 발생하는 현상일 뿐이고 특별히 정치적인 뉘앙스는 찾을 수 없었다. 하긴 혁신 직종 위주의 정책만을 다루고 있으니 이 또한 정치적이다고 할 수도 있겠다.
지식 전파는 지리적으로 가까운 기업 사이에서 발생한다는 사실도 서울에 사는(경기도와의 경계까지 500m. 올해까진 서울 사람) 프로그래머로서 많은 공감이 된다. 사실 나는 별로 안 하지만 스타트업쪽이나 개발자 모임에서 만나는 분들이 네트워킹하는 모습을 보면 이 업계가 서울을 뜨긴 글렀다는 생각도 든다.
하나의 기업이 해외로 이전한다거나 군산의 경우처럼 특정 직업이 사라지는 현상에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내고 있는데, 이를 전 세계의 공동 생산으로 바라보고 있다. FTA로 쌀 개방할 때도 생각난다. 농민은 죽지만 나머지는 더 싸게 쌀을 사먹을 수 있다. 그리고 그 혜택은 저소득층일 수록 더 커진다. 이 책의 가장 큰 한계가 이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전체적으로 보면 긍정적인 현상인데 개개인은 다 죽을 맛이라는 거. 죽어가는 산업에 산소호흡기를 대는 수준까지는 아니라도 고장난 가구 고쳐쓰는 마음 정도는 필요하겠다는 생각.
이렇게 새로운 직업이 계속 생기고 여기에 다른 직업이 혁신 직업을 보조하고(그들의 생산성을 높여주고) 사라질 직업은 사라질텐데, 오래전부터 인당 투입 시간에 큰 변화가 없는 미용사, 서빙하는 종업원, 간호사 등은 앞으로도 크게 변화는 없을 것이라 내다봤으나(내가 제대로 읽은 게 맞나?) 기계가 대체하기 쉬운 건 중간 정도의 교육 수준에 중간 정도의 소득을 받는 사람들의 직업이라고 한다. 그냥 우리 모두 죽었다라고 생각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혁신 직업에 속한 이들도 그들의 수명 안에는 중간 정도의 대체 가능한 직업이 될 테니까. 이렇게 보니 세상에 쉬운 일은 사라지고 모두가 고통에 쌓일 거라는 나의 예언이 맞아 들어간다. (젊을 때 혁신 산업에 종사하고 나이 들면 종교 산업에 들어가는 것도…)
[근로시간 단축 한숨짓는 자영업] 저녁 예약 손님 뚝···식당가는 “죽을 맛” 노래방은 “곡소리”
멍청한(혹은 고약한) 기사긴 하지만 자영업자가 이렇게 많은 것도 그릇된 회식 문화가 키워놓은 산업일 지도 모르겠다. 개개인의 생활은 고통스럽겠지만 변화는 계속 더 빨라질테고 다들 얼른 준비를 하셔야 할텐데. 나는 여전히 나이들면 외식업을 차리는 걸 고려하고 있지만, 쥐꼬리만한 월급을 모은 돈을 모두 투자해선 안된다. 나이가 들면 어떤 직업이든 치고 빠질 생각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