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 대량살상 수학무기

<사피엔스> 저자, 유발 하라리 강력 추천

이라는 문구에 묻어가야 했던 안타까운 책.

대량살상 수학무기

유능한 수학 박사이자 종신 교수로 지내다 현실 세계에 수학을 활용한다는 아이디어에 매료되어 헤지펀드 회사에서 퀀트로 지내다 금융계의 몰락(아직 정신 못차렸지만)을 체험하고 수학이 얼마나 파괴적으로 쓰일 수 있는지 충격도 받고 지금은 월가점거운동의 하위조직에서 알고리즘을 감사하고 위험성을 측정하는 기업에서 일하고 있다는 캐시 오닐의 책이다.

꽤나 매력적인 좌파 선생님이다. 번역이 꽤나 깔끔해서 잘 읽히는 것도 있겠지만, 이 양반 글솜씨가 꽤 좋다.

대량 살상 무기(weapons of mass destruction)를 비틀어 대량 살상 수학 무기(weapons of math destruction)라는 용어를 만들고 이를 대량 살상 무기와 같은 무게감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인지 그와 똑같은 축약어 WMD를 꾸준히 사용한다.

WMD가 되기위한 최소 조건으로 불투명성, 확장성, 피해를 든다. WMD들은 어떤 조건으로 수학 모형을 만드는 지 알 길이 없고, 이를 통한 결정으로 발생한 득실을 따져보고 데이터를 조정하는 피드백 과정이 없다. 피해를 받은 사람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이 데이터를 활용한 또 다른 파괴적 피드백 루프에 빨려 들어간다. 그리고 피해를 받는 것은 사회적 약자들부터.

매우 합리적으로 보이는 빅데이터 기반의 판단/의사결정이 인간의 편견이 그대로 들어간 대리 데이터(직접적인 인과관계를 나타내는 데이터를 구할 수 없어 선택하는, 상관있어 보이는 다른 데이터)를 활용해 불투명하게 관리되고 확장해 나가는 모습을 교육/노동/치안/정치 등 다양한 방면에서 찾아 보여준다. 그리고 WMD들은 서로 데이터나 모형을 가져다 응용하기도.

난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빅데이터도 모으는 사람, 분석하는 사람의 관점이 들어갔을 거라는 생각은 많이 해봤지만, 거기서 피해를 받는 사람을 이렇게 깊이 생각해보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의외로 미국의 교육이나 노동 현실은 우리나라 못지 않게 비인간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미국도 이미 약자들에게는 헬이다. 정말 우리나라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 이 분 남편이 집안일도 안 도와주는 것을 언급하는데, 아…이런 고향의 맛이라니.

사실 중간이후로는 조금 지루하기도 했는데, 이 썩은 시스템이 너무 뻔한 수작을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다 그렇게 약자부터 빨아먹고 약자부터 약자부터.

인적성검사

이중에 매우 가슴에 와닿은 한가지는 인적성검사인데,

이직하기 전 회사에서 인적성검사를 구인 프로세스에 붙이는 일도 했었지만, 나는 인적성검사를 매우매우 싫어한다. 그 회사 들어갈 때도 검사를 봤는데, 긴장을 했는지 시간 계산을 잘못해서 완전 개판으로 쳐놨다. 아마 100점 만점에 30점 나왔던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 뽑아다 써주신 건 감사한데, 회사 입장에서 그게 잘 한건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적어도 30점짜리 직원은 아니었던 건 확실하다.

인적성검사를 만드는 회사를 보면 이런저런 연구진이 막 열심히 엄청 대단하게 만드는 것처럼 해놨는데, 누가 어떻게 만드는지도 모르겠고 그게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오류가 정말 없는지 알 길이 없다. 인적성검사 자체는 그렇다치고 그게 업무에 도대체 무슨 연관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검사를 개판으로 치고 들어왔는데 좋은 직원이거나 아니면 검사는 잘 봤는데 막상 들어와보니 그지같은 직원이었다면, 그 검사에 피드백을 줘야 하지않나? 하지만 그럴리가 없다. 그 검사는 회사 업무와는 전혀 상관없고 영업기밀이라 밝힐 수 없는 내부 알고리즘이며 한두 업체에 커스터마이징 해주기에는 단가도 너무 낮고 각 업체는 영세하다. (검사 결과를 이해하는 인사팀 내부 정책에 피드백을 줄 수 있긴 하다)

나도 가끔 면접에 들어갈 때 인적성검사 표를 들고 갔었는데, 뭔가 그 사람이 마음에 안들면 괜히 인적성검사에서도 안 좋게 나온 부분을 찾기도 했다. 이건 뭐랄까 혈액형 심리테스트에서 맞아맞아 이건 내 이야기야라고 생각하는 심리 같기도. 요즘 추세는 인적성검사가 등수를 나누는 게 아니고 성향 분석을 해주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어차피 각 기업에서는 그걸로 등수를 만들어주기를 원한다. 난 쓰레기만 걸러내면 좋아요 같은 느낌이랄까, 혹은 이왕이면 다홍치마랄까.

결국 제대로된 인사팀이라면 인적성검사로는 충분한 해답을 못 얻는 게 정상이고, 그냥 참고하는 용도로만 받거나 데이터를 쌓아 나중에는 인적성검사 결과를 활용할 수도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갖는 수준일 것이다. 과연 도움이 될까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쩌면 매년 절에서 부적 하나씩 받아오는 어머님 심정으로 인적성검사를 받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걸 통과하면 훌륭한 직원이 될 것입니다. 비나이다.

결국 평범한 직원이 유리한 게임같기도 하다. 훌륭한 인재를 놓치는 것보다는 똥같은 직원을 걸러내는 것이 더 중요한 회사도 분명 있으니까 절대 쓰지 말라고는 못하겠다. 인재는 중요하고 그만큼 간절한데 부적하나 걸어두는 것이 뭐가 그리 문제인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다니는, 내가 다닐 회사는 데이터에 기반한 결정을 하되 그 데이터를 의심할 줄 아는 회사였으면 좋겠다.

이걸 보는 각계의 인사팀은 우리가 그렇게 아마추어처럼 일을 하겠니라며 혀를 끌끌 차겠지만, 인적성검사가 유의미한 데이터가 될 수 없다는 것 하나는 양보를 못하겠다.

결론

뜬금없이 인적성검사에 열을 올렸지만, 스스로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인간들의 논리에 얼마나 많은 빈틈이 있는지 너무 생생하게 콕콕 잘 짚어주는 책이었다는 걸 말하고 싶고, 많은 데이터를 다뤄야 할 때나 가설을 세울 때 특히나 피해받는 사람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면 더욱 신중해야겠다는 교훈을 You Know, I Learned Something Today 하면서 마칠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