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자일 코리아 컨퍼런스 2019 후기
Agile, Culture, Human - Be the Change!
2019.10.18 COEX Grand Ballroom에서 진행됐던 Agile Korea Conference 2019를 다녀온 후기 입니다.
Prologue
Scene #1
나름 사장님/CTO의 지원도 잘 받는 것 같고 사내 스크럼 마스터가 여럿 있으며, 스프린트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개발 문화도 썩 괜찮아 보이는 회사에 다니는 형님이 애자일은 제대로 동작할 수 없다는 말씀을 하셨다. 일상의 스프린트부터 인사평가까지 많은 문제를 발견하신 것 같았다.
이런 문제를 다룬 글도 매년 잊을 만 하면 나타나 소셜 네트웍을 달군다. “애자일은 말도 안돼. 스프린트는 죽었다”. 그런데 내 짧은 지식으로는 그런 글이 애자일을 다루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애자일이 하나의 스타일이라면, 스프린트는 구현체이자 프레임웍이다. 애자일하게 일하기 위해 일관된 업무 프로세스를 만들고 모두가 쉽게(과연 쉬울지는 모르겠다) 따를 수 있는 행동 지침을 명시한 것. 그런데 그게 그 팀/회사에 맞지 않을 수도 있고, 그렇다면 바꿔야 하지 않는 건가…라는 것이 나의 의문이었다.
애자일이 무엇인지는 그 형님네 스크럼 마스터들이 더 잘 알 것인데, 왜 개선하지 않는 것일까 엄청 궁금했다. 혹은 진행 중인가? 언젠가 형님께 부탁해서 술자리라도 마련해보고 싶다.
Scene #2
100명 이상의 카카오톡 단체채팅방 끔찍히도 싫어하는데(앱 아이콘에 숫자를 꼭 없애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 애자일 컨퍼런스 코리아의 단톡방은 꽤나 조용해서 그나마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컨퍼런스를 앞두고 취소나 출석 인증에 관한 문의가 끊임없이 올라왔고 - 여기까진 그럴 수 있다. 딱히 이야기할 곳이 있어보이진 않았으니까 - 급기야 운영진 전화번호를 공개했으나 진상부린 사람들이 꽤나 있었나보다. 행사 진행에 있어 취소 등 행정 업무 지원이 좀 미비했던 것은 사실이나, 개인 시간 쪼개 진행하는 사람들을 욕하고 비난하는 사람도 많은 게 사실이다. 어느 컨퍼런스든.
그랬구나 하며 운영진에게 동정심을 가지던 찰나, 어떤 사람이 “애자일하지 않군요”하면서 방을 나가버렸다. 하루 전 취소가 안되어 돈을 날린 것이 애자일하지 않다니.
여럿 당황한 공기가 감돌았고, 어떤 분은 친절하시게도 애자일한 것이 무엇인가를 대신 말씀해주셨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미 그 의미가 무슨 뜻인지 알았을 것이다.
이를테면 ‘애자일 한다고 하는 사람들은 완벽해야한다’. 음?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좌파 놈들 지들은 깨끗한 척 하더니…’ 이런 거?
그러니까 나는 애자일이란 것은 ‘나를 가르치려 드는 잘난 척 하는 사람들의 요식 행위’같은 것 쯤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해석한다.
가만. 이 또한 어디서 많이 본 장면.
“TDD는 현실적이지 않다”
TDD를 자신이 얕게 경험한 만큼만 이해한 사람들 혹은 어떤 유튜브에서 유명한 사람이 이야기한 것만 받아들이면 정말 현실적이지 않은 것만 같다. 난 ‘현실적이지 않다’는 의미는 어쩌면 현실에 맞추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Agile Korea Conference 2019
Lean Coffee
2017년인지 컨퍼런스에서 린커피란 것을 처음 목격했을 때, 도대체 왜 저러는 건지 이해하지 못해서 참여할 생각이 없었더랬다. 올해부터는 거의 매월 애자일 밋업에 나가보니 그 이상한 사람들(매사에 이렇게 적극적인 사람들은 교회 이외에는 경험해보지 못했었다. 예비군과 지구 반대편에 살 것 같은 사람들임)에 슬슬 적응이 되기 시작했고, 린커피도 참여해보고 싶었다. 실제로 어떤 분은 ‘커피를 준다’고 알고 오신 분도 있었는데, 컨퍼런스에서 카누를 제공하긴 하나 린커피와는 크게 관련이 없어 보인다. 린커피에 대해 궁금하신 분은 여기같은 글을 좀 더 읽어보시면 되겠다.
전날 매우 힘들 일이 있어서 린커피를 약 20분 남겨놓고 도착했는데, 그래도 분위기나 볼 겸 슬쩍 옆에서 진행중인 테이블에 꼈다. 애자일을 많이 경험해보고 고민해본 사람들이 주를 이루는 월간 밋업과 다르게 컨퍼런스는 애자일을 도입했으나 잘 안되니 고통스러워 하는 사람들이 오지게 많이 오는 것 같다. Modern PHP 모임에 가도, 처음 오신 분들은 레거시 PHP에 고통받는 이야기만 하고 가시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처럼 컨퍼런스에서의 린커피는 애자일 도입 초기의 고민이 주를 이룰 수 밖에 없는 흐름이 되어 가는 것 같았다.
이야기 자체는 크게 유익하지 않았지만, 다음에는 처음부터 재미있게 이야기 할 수 있으리란 확신이 들었다.
Keynote : Play Agile like an Adult: a story of mistakes from Formula1 to bank
영어로 진행됐는데, 이탈리아 악센트(맞나?)라서 내가 이해할 수준이 아니구나 싶어 바로 통역 버전을 들었다. 그러나 이런 전문 분야 컨퍼런스는 통역하시는 분이 참 고생이 많다고 느꼈을 정도로 매끄럽진 않았다.
대충 알아먹기로는 회사를 옮기는 곳마다 여러 시도를 했고, 그걸 꽤 잘했다…정도 유치한 감상 밖에 남길 수 없는데…
당시 메모한 것에는 좋은 이야기가 많이 적혀있는데, 맥락을 잘 이해 못하는 관계로 묻어두기로 한다.
그 분의 그런 경험에서 단편적인 사실만 나열한다는 느낌도 들었는데, 그간의 고민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고 느꼈다. QA를 오래했으면 꽤 괜찮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을 것도 같다. 그 열점이 안타까울 정도로 열심히 발표해주셨다.
AI 프로젝트에 Agile을 도입했더니 나만 찌질거리는 것 처럼 느껴졌던 5가지 이유 - 도경태
이 분은 나름 유명하시기도 하고 발표 경험도 많은 분이라 믿고 들어갔다. 발표에 개그 포인트가 매우 많았음에도 전혀 웃음이 터지지 않았다. 청중의 연령이 좀 많은 것인가, 아니면 너무 진지하게 듣고 있는 건가, 아니면…
아무튼 연구자와 엮일 일이 없는 나로서는 크게 도움될 이야기는 없긴 한데, 그럭저럭 재미있게 잘 들었다.
안정지향적 조직에서 어떻게 애자일을 적용할 것인가? - 정광섭
개인적으로 아는 분이라서 들으려고 했으나 사실 그 시간대 땡기는 세션이 전혀 없기도 했다. 그런데 처음부터 전에 들었던 발표 내용이 나오길레 잠시 다른 세션에 한눈 팔고 오기로 했다. 역시나 딱히 땡기는 세션이 없었고 사춘기 10대처럼 방황하다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러자 5분만에 끝. 아쉬웠다. 안정지향적 조직 이야기 좀 듣고 싶었는데.
애자일 코치로의 축적의 시간 - 고종범
이 분도 유명해서 발표를 잘 하시겠지 하고 들어갔었는데, 나름 재밌게 들은 것 같은데 무슨 내용이었더라…
며칠 됐다고 벌써 기억이 안나다니…
좋…좋았다고 결론을 내보자…
오렌지라이프의 Agile 조직문화 내재화 사례 - 천지원
가장 듣고 싶었고, 가장 좋았던 발표였고, 가장 중요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단 다른 발표자들과 다르게 또랑또랑하고 delivery가 훌륭했다.
오렌지라이프가 애자일을 도입하는 과정을 설명해줬는데, 올해는 한동안 애자일 모임을 가면 오렌지 라이프 이야기가 빠지지 않았더랬다.
오렌지라이프가 성공적으로 애자일 전환을 이룬 것은 사장님이 엄청나게 적극적이었고, 스스로 모범을 보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 사장님이 먼저 해외에 나가 애자일을 배워오고 전파했다
- 성급하게 도입하지 않고 조직에 자연스레 전파되도록 많은 노력을 했다
- 전사의 모든 스크럼 미팅을 최소 한번은 참여했고, 나눌 이야기에 대해 미리 알고 오며, 참석자의 이름도 미리 보고 온다
그렇다면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회사에선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란 뜻이기도 하다.
스폰서쉽이 얼마나 중요한지, 조직이 애자일하게 변하는 과정이 얼마나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지 잘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회사에선 이…
Agile, Sociocracy & Facilitation - 주현희
올 해 일정이 생겨 못 간 월간 밋업에서 발표하셨던 내용인 것 같은데, 반응이 꽤 괜찮았던 것 같아서 궁금했던 차.
Sociocracy라는 Democracy를 넘어 스스로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조직을 만드는 것에 관한 이야기다.
올해 이뤄진 회사의 조직 개편 구조에서는 Tech Lead가 외부와의 접점이 되고 팀원들을 수동적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어 고민이 많은데, 이 분이 말씀하시는 소시오크라시와 내가 원하는 방향이 맞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소시오크라시에 관한 이야기만 해도 꽤나 분량이 많아서 대략의 개념만 소개해주신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발표 자체는 좋았지만, 뭔가 구체적인 것이 부족했다는 느낌이 남아있다.
Epilogue
요즘 읽는 책.
전통적인 방식으로 서비스를 찍어내는 회사에서 점진적으로 애자일하게 개선(카이젠)해 나가는 과정을 소설의 형식으로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멤버들의 감정이나 갈등도 세심하게 표현하고 있어, 나처럼 애자일 프로세스가 여전히 낯선 사람이라면 읽어볼 만 하다.
여기에서 다양한 실천 방안이 소개되는데, 겸사겸사 나도 팀 관리 방식을 바꿔보려고 읽으면서 메모해놓고 시도해보려 한다.
지금은 지라 스프린트보드와 화이트보드+포스트잇을 모두 활용하고 있는데, 이건 또 별도의 포스트에서 다루기로 하고,
같이 컨퍼런스에 참여했던 동지들과 점심을 먹기로 했다. 이번 컨퍼런스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 중 하나다.